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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눈동자, 불량한 수집



글 현시원 (시청각 대표, 큐레이터)

 

오늘날 특정 인물을 사진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김진희가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의 20대 여성 사진이다. 무분별한 출처와 각주가 난무하는 현재의 이미지 유통 상황에서 김진희는 1:1 대면하고 조우한 인물을 통과하여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작가는 눈앞에서 정면으로 응시한 젊은 여성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의 사진에는 측면을 바라보거나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는 눈동자를 가진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정면을 취한다’는 것은 김진희가 사진을 만들어내는 어떤 태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대 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전작 Whispering, 진도를 배경으로 한 April, 그리고 발표되지 않은 여러 작업들에 이르기까지 김진희는 대상을 향해 거침없이 여러 번 다가서고 대면한다.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저장 위치에서 찢겨지고 발가벗겨진 채로 가공 편집되는 여성 이미지는 이러한 이미지 생산자가 가장 눈독 들이는 대상이 분명하다. (지난 해 최고의 발명품인 동시에 오명을 얻고 있는 셀카 봉을 손에 든 자는 거리의 20대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20대 여성 이미지는 화려하고 오독되기 쉬우며 가장 흔하게 유통되는 물질이다. 김진희 또한 20대 여성을 사진의 1차적 모델로 삼는다. 20대 여성의 신체가 그의 1차 모델이라면, 그 인물과 작가가 나누는 내밀한 대화의 과정이 또 다른 모델이 된다. 그 앞뒤로 작가가 찍어왔던 Self Portrait 
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 얼굴들이 있다. 20대 여성을 화면에 담은 She (2014-) 시리즈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미(deja, already) 본 것(vu, seen) 같은 착오를 불러일으키는 이 여성들은 통성명을 막 뗀 인물에게는 보여주기 힘든 비사회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일부러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이 얼굴이 가장 그들다운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어른, 다 큰 청소년, 혼자 있는 여자들. 무심하며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등등의 온갖 형용사를 호기롭게 피해가는 이 무언의 표정은 ‘앉아있는 여성’이라는 초상화 역사의 스테레오 타입을 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비타협적 이미지다. 모델과 촬영자 모두 사진 안에 들어와 있을 뿐 사진 촬영 중이라는 행위에 푹 빠져있지 않다는 게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연출되거나 치장하지 않은 사진 속 이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제안은 단순히 그의 얼굴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감정 교환에 대한 제안이다.

김진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동시대 젊은 여성을 대면하고 촬영, 기록, 저장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그 자체다. 작가는 촬영자와 모델이 카메라를 두고 자리한 관계를 매개 삼아 여러 층의 고백을 사진 안팎에 덧입힌다. 이 고백은 첫째 작업의 완성 지점에서는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작가 모델 사이의 대화로 이뤄진다. 둘째 작가가 Whispering 
시리즈에서 She 작업으로 이동하게 되었는가를 조정하고 결정해 나가는 자신과의 대화가 있다. 타인의 고백을 듣기 이전에, 작가는 다른 이를 끊임없이 만나고 대면해야 하는 인물 사진 찍기에서의 자기 혐의와 위치를 질문한다. 작가는 모델에게 계획된 질문 리스트보다는 “요즘 어때?”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 질문은 작가 자신의 방향을 향하기도 한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지닌 도구가 되는 것을 회피하는 이 사진들은 각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호하고 저장하는 수단을 자처하는 듯 한 명 한 명의 고해성사를 사진으로서 압축해낸다.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겪으며 제작되는 She 시리즈는 촬영된 이미지의 완결 지점을 당장 알 수 없게 되는 일종의 시간 감각을 획득한다. 이것은 김진희가 사진을 매개로 실행케 하는 일종의 서신이자 교환행위가 품은 또 다른 시간과도 겹쳐진다.

“요즘 어때?”

작가는 모델과 자신이 나누었던 농도 짙은 고백의 서사를 소화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덜 보여주기, 그리고 다른 곳의 저장장치를 이용하기를 구사한다. 즉 나누고 들었던 이야기를 작품 캡션에 위치시키지 않고 도리어 텍스트의 물리적 위치와 의미를 최대한 절제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거세된 이 정지버튼의 화면에서 유일하게 말하기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문장들이다. < 지난 여름 >, < 아주 이상한 느낌 >, < 싫어 >, < 자꾸 비밀을 만든다 > 등 구어체의 문장을 제목으로 한 She 
는 정지되어 있는, 상반신까지의 젊은 얼굴을 보여준다. 예고편 이미지로 소비되는 여성이 아닌 무엇이든 고백한 후의 여성은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이미지다. 그것은 유통되기 힘든 이미지이며 바닥난 서사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정보가 아닌 고백록이다. She에서 관람자가 모델에 관해 알 수 있는 객관적 지표는 아무 것도 없다. 6년 동안 지속했던 Whispering 시리즈에 등장하던 소도구, 장치, 정보들은 She에서 침묵한다. 옷을 입지 않은 20대 여성이 자신의 흔적과 사물이 남은 침대 주변에 앉아있거나 담배 불을 지지는 등의 특정 동작을 하고 있던 Whispering에 비해 She 는 정지된 사물처럼 인물의 상태를 기록해낸다.

카메라를 든 김진희 또한 그가 만난 20대의 피사체들과 멀리 있지 않은 85년 생 여성 작가다. 김진희가 던지는 질문은 철저하게 모델의 상황과 기분에 의존하여 있는 바, 그가 받아낸 답변은 혼자 보는 일기만큼이나 고백적이고 농도 높은 개인의 감정들이다. 고백의 행위를 사진의 밑바탕으로 삼는 것은 김진희가 She
와 Whispering 작업에서 취하는 하나의 채집 방법이다. 사진 찍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텍스트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그것은 ‘찾아가는’ 행위에 방점이 찍힌 채집이다. 사진의 잠정적 모델에 다가가고 젊은 여성의 성과 내면이라는 좌표를 구성했다는 면에서 김진희의 태도는 일견 구술사적인 면모의 연구자를 닮아있다. 그러나 그가 모으고 수집한 대화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갈겨쓴 손 글씨로 불량하고 비균질하다. 그것은 특정 집단의 보편적 기록이 되기엔 극단적인 정서를 담아내며 ‘정리’를 거부한다. 이것은 “상처”를 가감 없이 노출하는 순도 높은 고백의 글쓰기로서 충실한 무엇이다.

흥미롭게도 작가가 사진 위에 덧붙인 다른 물질은 여성의 수공예적 도구로 자주 언급되는 바느질을 통해서다. 김진희는 인물의 사적인 체험과 정서를 바느질을 통해 덧붙인다. 마치 선언하듯, 그러나 한편 이 문장을 통해서 당신은 아무 것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는 듯, 사진에는 바느질로 수놓은 텍스트가 올라서 있다. 작가는 모델과 나눈 이야기나 서신 중 일부의 문장을 발췌하고 이를 독어, 영어, 불어 등 다른 나라의 문장으로 바꿔버린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작가의 태도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저장하고 보호하는 수신자로 뒤바뀌는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김진희 또한 타국어로 번역된 이 짧은 문장이 구사하는 어휘와 문법의 정확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짧은 문장을 툭툭 발췌해 직역해버린 데에서 오는 필연적인 오역은 이들의 내밀한 교환을 저장하는 방어 수단이며, 동시에 사진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바느질을 하는 공격의 제스처와 접점을 이룬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천과 실을 오가는 바느질은 김진희에게 와서 사진의 물리적 두께 망을 뚫어버림으로써 수를 놓기보다는 뚫고 돌진하는 수직적 행위로 뒤바뀐다.

작가의 작업과정에 바느질이 등장했던 것은 매우 긴요한 쓰임새가 있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Whispering 
시리즈를 진행하며 작가는 애초 사진 공개에 동의했던 인물들에게 사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모델의 얼굴과 몸 일부를 가려야한다는 의지의 소산으로서 먼저 Whispering 사진 속 얼굴과 신체 일부 위에 바느질을 했다면, 그 과정에서 작가는 바느질을 통해 이미 있던 대상을 도려내거나 삭제하지 않으며 다른 시간대의 존재 방식과 외피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실은 젊은 여성의 존재와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또 분산적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로 체험하게끔 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눈여겨볼 점은 20대 청춘 여성 인물이 작가의 카메라 맞은편에 앉아 화면에 포착되어 모델로 변이되는 순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관습적 이미지 즉 ‘앉아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란 초상화의 역사 아래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그려온 재현물이 아니던가? 바느질 또한 좋은 아내와 어머니의 자질이자 소품, 아마추어적 소일거리로 인식되며 상위 예술의 카테고리에는 누락되기 마련 아닌가? 1815년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의 누이 메리 램은 “돈벌이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지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질 것”이라고 적으며 그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김진희의 작업은 여성 재현과 페미니즘 미술의 계보라는 역사적 그물과 맞닿아있으면서도 오늘의-여성, 이미지-생산을 둘러싼 어떤 새로운 주제로 돌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당도해있다.

작가가
노트에 언급한 “상처”와 “희망”이라는 단서는 오늘날 온라인을 포함한 이곳저곳을 떠도는 가벼운 이미지들에 비해 너무도 묵직하고 방대하다. 복사와 붙여넣기, 카피본으로 범람하는 사진 이미지는 얼굴과 풍경의 가치를 질적으로 오염시키고 양적으로 압도해버린다. 이런 점에서 이 상처와 희망이라는 화두를 섣부른 치유로 둔갑하지 않은 채 개별적 풍경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김진희에게 매우 시급한 문제다. 한국의 20대 여성 화자로서 돌진하고 있는 작가가 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의 굴러다니는 이미지가 독립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일한 하나로 포획되지 않으면서 개별적 상태를 지켜내는 저지대로서의 그의 작업은 April 시리즈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진도를 찾아간 작가는 April(2014-)을 통해 그곳의 풍경과 그 풍경 속을 둘러싼 사람들의 장면 위에 바느질로 다른 점선면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진도의 풍경 사진과 미국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슬라이드 필름 사진 위에 노란색, 분홍색, 연두색을 내는 밝은 색상의 실은 이곳을 다른 차원으로 전이하도록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망한 바람은 예고된 실패를 거듭한다. April의 장면 장면은 작고 흰 동그라미를 수놓아 눈이 내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거나, 나무에 큰 열매가 매달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른 내러티브를 상상하도록 이끌지만, 부질없다. 실제 현실과 사진은 다른 리얼리티 안에 산다.
“실물과 사진은 정말 다른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현실의 부박함이 지닌 가능성에 착목(着目)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와 같다. 추상화한 점선면의 이미지는 하나의 전형적인 의미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다른 풍경을 만들려는 의지다. 그들의 말을 사진을 파고들고 가로지르게 하는 She 
또한 여성 이미지의 다른 이름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김진희는,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 썼던 글을 지우고 새롭게 쓰는 것처럼 오늘날 타인의 내면과 풍경의 상처를 카메라에 담는 원론에 천착해나가며 새로운 종이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