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특정 인물을 사진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김진희가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의 20대 여성 사진이다. 무분별한 출처와 각주가 난무하는 현재의 이미지 유통 상황에서 김진희는 1:1 대면하고 조우한 인물을 통과하여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작가는 눈앞에서 정면으로 응시한 젊은 여성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의 사진에는 측면을 바라보거나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는 눈동자를 가진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정면을 취한다’는 것은 김진희가 사진을 만들어내는 어떤 태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대 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전작 Whispering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저장 위치에서 찢겨지고 발가벗겨진 채로 가공 편집되는 여성 이미지는 이러한 이미지 생산자가 가장 눈독 들이는 대상이 분명하다. (지난 해 최고의 발명품인 동시에 오명을 얻고 있는 셀카 봉을 손에 든 자는 거리의 20대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20대 여성 이미지는 화려하고 오독되기 쉬우며 가장 흔하게 유통되는 물질이다. 김진희 또한 20대 여성을 사진의 1차적 모델로 삼는다. 20대 여성의 신체가 그의 1차 모델이라면, 그 인물과 작가가 나누는 내밀한 대화의 과정이 또 다른 모델이 된다. 그 앞뒤로 작가가 찍어왔던 Self Portrait
김진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동시대 젊은 여성을 대면하고 촬영, 기록, 저장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그 자체다. 작가는 촬영자와 모델이 카메라를 두고 자리한 관계를 매개 삼아 여러 층의 고백을 사진 안팎에 덧입힌다. 이 고백은 첫째 작업의 완성 지점에서는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작가 모델 사이의 대화로 이뤄진다. 둘째 작가가 Whispering
“요즘 어때?”
작가는 모델과 자신이 나누었던 농도 짙은 고백의 서사를 소화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덜 보여주기, 그리고 다른 곳의 저장장치를 이용하기를 구사한다. 즉 나누고 들었던 이야기를 작품 캡션에 위치시키지 않고 도리어 텍스트의 물리적 위치와 의미를 최대한 절제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거세된 이 정지버튼의 화면에서 유일하게 말하기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문장들이다. < 지난 여름 >, < 아주 이상한 느낌 >, < 싫어 >, < 자꾸 비밀을 만든다 > 등 구어체의 문장을 제목으로 한 She
카메라를 든 김진희 또한 그가 만난 20대의 피사체들과 멀리 있지 않은 85년 생 여성 작가다. 김진희가 던지는 질문은 철저하게 모델의 상황과 기분에 의존하여 있는 바, 그가 받아낸 답변은 혼자 보는 일기만큼이나 고백적이고 농도 높은 개인의 감정들이다. 고백의 행위를 사진의 밑바탕으로 삼는 것은 김진희가 She
흥미롭게도 작가가 사진 위에 덧붙인 다른 물질은 여성의 수공예적 도구로 자주 언급되는 바느질을 통해서다. 김진희는 인물의 사적인 체험과 정서를 바느질을 통해 덧붙인다. 마치 선언하듯, 그러나 한편 이 문장을 통해서 당신은 아무 것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는 듯, 사진에는 바느질로 수놓은 텍스트가 올라서 있다. 작가는 모델과 나눈 이야기나 서신 중 일부의 문장을 발췌하고 이를 독어, 영어, 불어 등 다른 나라의 문장으로 바꿔버린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작가의 태도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저장하고 보호하는 수신자로 뒤바뀌는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김진희 또한 타국어로 번역된 이 짧은 문장이 구사하는 어휘와 문법의 정확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짧은 문장을 툭툭 발췌해 직역해버린 데에서 오는 필연적인 오역은 이들의 내밀한 교환을 저장하는 방어 수단이며, 동시에 사진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바느질을 하는 공격의 제스처와 접점을 이룬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천과 실을 오가는 바느질은 김진희에게 와서 사진의 물리적 두께 망을 뚫어버림으로써 수를 놓기보다는 뚫고 돌진하는 수직적 행위로 뒤바뀐다.
작가의 작업과정에 바느질이 등장했던 것은 매우 긴요한 쓰임새가 있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Whispering
눈여겨볼 점은 20대 청춘 여성 인물이 작가의 카메라 맞은편에 앉아 화면에 포착되어 모델로 변이되는 순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관습적 이미지 즉 ‘앉아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란 초상화의 역사 아래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그려온 재현물이 아니던가? 바느질 또한 좋은 아내와 어머니의 자질이자 소품, 아마추어적 소일거리로 인식되며 상위 예술의 카테고리에는 누락되기 마련 아닌가? 1815년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의 누이 메리 램은 “돈벌이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지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질 것”이라고 적으며 그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김진희의 작업은 여성 재현과 페미니즘 미술의 계보라는 역사적 그물과 맞닿아있으면서도 오늘의-여성, 이미지-생산을 둘러싼 어떤 새로운 주제로 돌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당도해있다.
작가가 노트에 언급한 “상처”와 “희망”이라는 단서는 오늘날 온라인을 포함한 이곳저곳을 떠도는 가벼운 이미지들에 비해 너무도 묵직하고 방대하다. 복사와 붙여넣기, 카피본으로 범람하는 사진 이미지는 얼굴과 풍경의 가치를 질적으로 오염시키고 양적으로 압도해버린다. 이런 점에서 이 상처와 희망이라는 화두를 섣부른 치유로 둔갑하지 않은 채 개별적 풍경으로 바라볼 것인가는 김진희에게 매우 시급한 문제다. 한국의 20대 여성 화자로서 돌진하고 있는 작가가 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의 굴러다니는 이미지가 독립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일한 하나로 포획되지 않으면서 개별적 상태를 지켜내는 저지대로서의 그의 작업은 April 시리즈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진도를 찾아간 작가는 April(2014-)을 통해 그곳의 풍경과 그 풍경 속을 둘러싼 사람들의 장면 위에 바느질로 다른 점선면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진도의 풍경 사진과 미국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슬라이드 필름 사진 위에 노란색, 분홍색, 연두색을 내는 밝은 색상의 실은 이곳을 다른 차원으로 전이하도록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망한 바람은 예고된 실패를 거듭한다. April의 장면 장면은 작고 흰 동그라미를 수놓아 눈이 내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거나, 나무에 큰 열매가 매달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른 내러티브를 상상하도록 이끌지만, 부질없다. 실제 현실과 사진은 다른 리얼리티 안에 산다.
“실물과 사진은 정말 다른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현실의 부박함이 지닌 가능성에 착목(着目)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와 같다. 추상화한 점선면의 이미지는 하나의 전형적인 의미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다른 풍경을 만들려는 의지다. 그들의 말을 사진을 파고들고 가로지르게 하는 She